결인속기처를 바람의 눈으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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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삼의 팔괘풍수 작성일19-05-03 22:51 조회2,960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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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에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옛것을 바탕으로 발전을 꾀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의 풍수지리는 어떠한가? 옛날로부터 전해져오는 고전풍수의 논리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현재까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논리가 그러하듯 풍수의 패러다임 또한 바뀌어야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풍수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고전풍수의 논리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풍수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있는 금낭경이나 청오경이라고 할지라도 현실과 괴리가 되는 내용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히 버리고 사장시켜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지난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수고로움이 선행 되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오늘 필자가 풍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결인속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작혈(作穴), 즉 혈을 맺기 위해서는 달려오던 내룡이 결인속기하여야 한다는 것이 풍수의 기본 논리이다.
그렇다면 용맥을 타고 온 기운이 결인속기처에서 병목처럼 좁아지느냐고 묻고 싶다. 아마 모든 풍수인들은 결인처의 형태에 따라 기운 또한 잘록하게 좁아진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풍수선생들이 그렇게 가르치다보니 모든 풍수인들은 맹목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기적 결인에 의해 혈장으로 들어가는 기운의 폭은 절대 좁아지지 않는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모든 풍수인들이 동의하지 않을 줄은 안다. 그러나 어찌하랴. 현실이 그러한 것을....... 필자의 말이 의심스러우면 내룡을 타고 달려오는 기운을 결인처에서 직접 체득하면 쉽게 알수 있는 사안이다.
혹자는 결인처의 기운이 변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을 기준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득혈과 실혈이 나누어지기 때문에 점혈에 있어서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결인처가 잘 발달되면 혈장의 기운 또한 최대한 응축되어 명당의 조건에 부합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기운은 형기적 결인에 의해 응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응축과 팽창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고 있는 형기적 결인처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바람이 되어 바람의 눈으로 보라. 혈을 보호하기 위한 바람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며 그동안 결인처의 잘못된 인식으로 실혈(失穴)이 발생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 또한 알수 있을 것이다. 풍수는 기운을 분변(分辨)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야지 그렇지 않고 눈으로 보고 기운을 판단하려고 한다면 점혈은 요원할 뿐이다.
댓글목록
거당님의 댓글
거당 작성일
형기론은 결인 속기처를 중요시한다 왜냐면, 결인속기가 크냐 작으냐에 따라 혈도 그 크기가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겉만 보고 땅속을 모르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모든 산천은 다 다르다는 사실 바람의 영향으로 급하면 바짝 붙어서 빨리 맺고, 느슨하면 길게 맺는다 아주 간단한 이치를 간과하고 있다.
혈을 형성하기 위하여는 바람의 방향을 알아야 한다. 일반 풍수인들은 바람의 영향을 대수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현실이다.
요즘 동강 풍수에서 엘로드 등 기구를 사용 하시는 풍수사들이 혈이다, 아니다 갑론 을박하고 있는데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하다.
땅속의지기를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수맥자리, 혈자리를 구분 하시고들 있는데 기구를 가지고 판별하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는 사실,
지사란 한 집안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는 마음을 각골명심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재삼의 팔괘풍수님의 댓글
정재삼의 팔괘풍수 작성일기운을 체크한다는 엘로드를 비롯한 모든 도구로 생기처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풍수에서 생기와 살기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기운을 논한다는 것은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시운과 좌향에 따라 기운을 논하는 현공풍수는 더욱 문제가 많다고 할 것입니다. 조금만 고민하면 논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련만 세상 모든 것이 연에 따라 가는 것이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