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효지의 상소문을 통해 바라본 조선왕조의 풍수 > 풍수잡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풍수잡설

목효지의 상소문을 통해 바라본 조선왕조의 풍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재삼의 팔괘풍수 작성일21-02-17 14:18 조회2,199회 댓글0건

본문

d906d244ff0fd5017bf5497a85ab6669_1613541546_6091.jpg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23(1441825)에 전농시(典農寺)의 노비인 목효지(睦孝智)가 빈궁의 능소인 안산 고읍 땅이 흉악한 땅이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이때 빈궁은 단종을 낳고 3일 만에 산후후유증으로 죽은 현덕왕후 권씨이다.

 

일개 노비가 세종에게 소릉(昭陵) 터가 흉하다고 감히 상소문을 올렸다면 그는 누구인가  

목효지(睦孝智)는 제향(祭享)에 쓸 곡식(穀食)을 맡아보던 관청(官廳)인 전농시(典農寺)의 노비 신분이었다. 그런데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릴 정도로 한문에 능했다면 그의 출신은 양반이었다가 노비로 전락한 가문이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 이러한 목효지가 현덕왕후를 모시려고 자리를 정한 소릉터가 매우 나쁘다고 세종에게 상소를 올리니 세종이 그의 간언을 가상히 여겨 면천을 해주었다. 노비 신분에서 벗어난 그가 세종 30년 불당을 설치하려는 세종과 맞서다가 미움을 사서 다시 노비로 전락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단종과 수양대군 사이에서 풍수로 정치적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세조가 즉위한 그해 교수형을 당하여 죽었다. 어찌 됐건 조선왕조실록에서 목효지가 16번이나 검색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풍수 실력을 과신했고 또 풍수를 통해 신분 상승을 모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풍수인으로써의 그의 삶이 고단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한 목효지의 상소문은 필자로 하여금 조선 초기의 풍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아랫글은 목효지가 상소문에서 주장한 명당의 조건을 필자가 윤색을 하였다.

 

"무릇 상지법(相地法)은 조종(祖宗)으로써 근본으로 삼는 것이오니, 조산(祖山)이 높고 험준해야 생기(生氣)가 왕성하고, 생기(生氣)가 왕성해야만 음덕(蔭德)이 끊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습니다. 대개 산천(山川)의 정기(精氣)는 제 스스로 운행하지 못하고 산맥을 따라서 운행(運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에 합당하려면 반드시 내룡(來龍)은 높이 솟아야 하고 또 청룡(靑龍)과 백호(白虎)는 잘 감싸야 하고, 안산(案山)은 정전(正殿)에서 임금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신하와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룡을 중심으로 사면에 빙 둘러서 있는 산들은 두 손을 마주 모아 인사하는 것처럼 공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은 맑고 깊은 물이 굽어서 흘러야 하되 물이 들어오는 근원과 빠져나가는 곳이 보여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물이 들어올 때 들어오고 나갈 때 나간다면 길()한 땅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만약 조종(祖宗)이 낮고 연약하며, 내룡(來龍)은 작거나 끊어지고 또 파인 데가 있으면 기맥(氣脈)이 연속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산과 물이 서로 등지고 나가서 휘감아 돌아가지 않고 어지럽게 흐르거나 또 물이 곧게 빠져나가거나 들어와야 할 곳에 나가고 나가야 할 곳에 물이 들어오면 흉한 땅이라고 여깁니다.”

 

(중략)

 

목효지는 상소문에 명당의 조건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안산(安山) 고읍(古邑) 땅의 문제점에 대하여 풍수 고서를 통해 조목조목 설명하였다. 그중에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낙도가(樂道歌)에 이르기를, ‘동궁(東宮)이 달려가서 서궁(西宮)을 지나면, 장자(長子)와 장손(長孫)이 일찍 죽는다. ’고 하였사옵니다.”

 

지리신서(地理新書)에 이르기를, ‘도로(道路)가 가로 파인 것은 기맥(氣脈)을 끊어지게 하는 것이라.’ 하였고, 또 신서(新書)에 이전(李筌)이 이르기를, ‘장성(長城)을 쌓느라고 산()을 끊어서 진()나라가 망하였고, 기변(淇汴, 필자주 : 허난(河南) 성에 있는 황하 지류)을 뚫느라고 지맥(地脈)을 끊어서 수()나라가 망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그 크고 작은 것은 비록 다르나, 이치인즉 하나이옵니다."

 

목효지가 현덕왕후를 고읍에 모시면 장자(長子)와 장손(長孫)이 일찍 죽는다. 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단종의 생모가 흉지에 모셔져 일찍 수양대군으로부터 어린 나이에 죽임을 당했다고 풍수가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목효지가 그 땅이 흉지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12종류의 풍수 서책을 인용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내세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진나라가 망한 것은 장성을 쌓았기 때문이고 또, 수나라가 망한 것은 물길을 내서 망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이다. 단지 성을 쌓고 강바닥을 팠기 때문에 기맥이 잘려서 한 나라가 망한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단종은 현덕왕후와 문종의 묘터가 흉지이기 때문에 삼촌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가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종의 운명을 알기 위해서는 부모덕 없는 단종의 사주팔자와 풍수적 길흉이 함께 논해져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주소 : (우)17160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반정로 101번길 3 상호명 : 만복가 대표 : 정재삼
사업자등록번호 : 174-22-01054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 용인시 제 55호
고객센터 : 010-9553-4927 이메일 : tojong114@naver.com 계좌번호 : KEB하나은행 620-181988-306 정재삼
Copyright ©2010 만복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