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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을 찾아 나선 을미년 이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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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삼의 팔괘풍수 작성일17-12-15 19:20 조회2,4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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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옥과의 천안 전씨 문중을 시작으로 다섯 문중의 이장일이 진행되어 7월 중순에 마무리 되었다. 이번에 진행된 이장 일은 형기와 물형에 관한한 최고의 경지에 있는 거당선생이 형기적 측면과 물형적 측면에서 혈자리를 찾으면 필자는 재혈과 작업을 담당하였다.

거당선생과 필자와의 인연이 된지는 이미 강산이 변했고 그간의 거당선생의 풍수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을미년에 진행한 이장 일을 통해 그는 분명히 신안(神眼)의 경지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범인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곳을 거당선생은 살피고 판단하는 능력이 있었다. 또한 그와 함께한 몇 달 동안 필자는 명당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옥과는 축복받은 땅인가? 결록에 나와 있는 쌍룡쟁주형과 선녀세의형을 옥과에서 만나다

 

올봄 거당선생으로부터 곡성 옥과에 큰 자리가 있으니 한번 내려가자고 연락이 왔다. 해서 옥과가 고향인 전사장님과 김사장님이 동행하여 우리 넷은 먼저 옥과 도치골로 향했다. 도치골에는 천안 전씨 선산이 있으며 상당히 넓은 면적에 각종 과실수와 농작물이 어우러져 있는 잘 꾸며진 농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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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았으랴 그곳에 결록에 나와 있는 쌍룡쟁주형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누가 그랬던가. 혈자리는 여자의 음부와 같아서 결코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대지(大地)일수록 숨어 있다 보니 그만큼 찾기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산 능선, 그곳에서 거당선생은 큰 자리를 찾고 우리 일행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해발 250M에 위치한 혈자리는 높다고 할 수 있지만 당판에 올라서면 전혀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사격을 이루고 있는 곡성의 모든 산들 또한 머리를 조아리듯 혈자리를 향해 생기를 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여의주를 희롱하는 듯한 모습은 이것이 쌍룡쟁주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혈장의 토질을 알아보기 위해 흙 한 삽을 뜨는 순간 필자는 다시 되 메울 수밖에 없었다. 흡사 피가 흐르는 듯한 느낌, 진짜 살아있는 용, 수없이 많은 땅을 파보고 확인하였지만 이토록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천지가 개벽된 이래 지금까지 인간의 손길을 거부했던 옥과의 쌍룡쟁주형을 세상에 드러낸 거당선생. 그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그 자리에서 서 있었다. 필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대자연 앞에서의 두려움.


전사장님은 그날 밤 그 혈장에서 눈이 시리도록 밝은 빛을 발산하는 선몽을 하였고 길일을 택해 이장이라고 하는 축제를 하게 되었다. 이장하는 날, 맏형 되시는 분께서 필자에게 전해준 말에 의하면 2년 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정계의 거물이 비서를 보내 몇 번이고 선산 매각하기를 간청했다고 한다. 문중 선산에 그러한 명당이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가파른 밭떼기에 그동안 부모님을 모셨으니 진귀한 보물을 손에 쥐고도 보물인지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모든 것이 인연이 닿고, 때가 되어야 제자리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이것을 그 어떤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다음으로 진행한곳이 김사장님의 선산으로 그곳에서 선녀세의형을 마주하였다.  대로변에 숨어서 빨래하는 선녀라는 뜻의 선녀세의형은 아주 오랜세월 풀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감추고 있었다. 필자가 거당선생을 신안의 경지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른 봄인데도 불구하고 선녀세의형은 길을 내주지 않았다. 누구나 입구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풀숲을 헤치고 거당선생은 우리 일행을 안내하였다. 당판에 들어선 순간 아직 이 자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당선생이 수없이 검토하고 검토한 수고로움에 대한 산물이겠지만 옥과는 분명히 축복받은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김사장 또한 축복 받았다고 할 것이다. 암반의 냉기로 인해 십여 년의 세월이 그대로 멈춰버린 자리에 어머니를 모시고 그동안 사업의 성공을 바랬던 김사장에게 회한이 밀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7월 초순 비로소 선녀세의형에 모친을 모시고 새로 조성된 산소 앞에서 통곡으로 그간의 서러움과 모친에 대한 송구함을 녹여낼 수 있었으리다.

 

더 이상 열거하면 무엇 하리, 바람맞고, 목렴에 시달리고, 아카시아 뿌리에 휘감긴 채 암반위에서 차갑게 누워계신 다른 문중의 조상님들 또한 거당선생과의 인연으로 명당이라고 하는 길지에서 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계기로 그 옛날 선인들께서 논하신 명당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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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어느 선인께서 치표하였던 밥주발이다. 명당자리를 찾아 헤매다 보면 먼 옛날 선인들께서 치표한 지리를 만날 때가 있다. 치표한 도자기는 땅속에 묻어 놓았기 때문에 직접 땅을 파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선인께서 언제 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광중 작업에서 묻어둔 밥주발을 발견하였다. 안쪽에는 붓으로 글을 써놓았는데 워낙 오래되어 전체적인 것은 알 수 없으나 판(判)자는 확실히 읽을 수 있고 서(書)자는 흐릿하지만 그것을 조합하면 판서(判書)라는 단어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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