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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왜 죽임을 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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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삼의 팔괘풍수 작성일21-02-18 10:29 조회1,8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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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인릉 종합안내도)

2021213, 설 다음날 거당 선생, 양우당 선생과 함께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인릉에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해 고향에 내려가기도 그렇고 그런, 우리는 핑계 삼아 모였다. 헌인릉에 간 목적은 단종이 왜? 어린 나이에 삼촌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이다. 혹자는 수양대군이 문종과 현덕왕후 묘지를 일부러 흉지에 모시는 역풍수를 하였기 때문에 단종의 삶이 그렇다고 하지만 필자는 그것에 대하여 동의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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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과 원경왕후가 모셔져 있는 헌릉)

역사에서 만약에라는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단종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왕권강화를 위한 태종의 외척척살이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정통성이 있는 조카를 죽인 수양대군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문종이 죽고 어린 조카 단종이  김종서와 같은 고명대신들에게 휘둘렸다. 한 예로 김종서의 인사 전횡과 황표정사(黃標政事)를 들 수 있다. 만약 김종서등 고명대신들이 단종의 꼭두각시로 세우고 신권을 강화했다면 조선 후기처럼 세도정치가 횡행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한마디로 왕권이냐 신권이냐를 놓고 피를 튀겼던 것이 계유정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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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卯方의 인기 상충이 흉하다)

 

아무리 왕의 자리가 탐난다고 하지만 친조카를 죽이는 반인륜적 행위가 왜 발생했는가를 풍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먼저 단종은 1441辛酉生이다. 그리고 인걸은 지령이라는 말이 있다. 왕대밭에 왕대 나고 쑥대밭에 쑥이 난다는 뜻이다. 해서 필자는 불운한 단종의 사주팔자를 증조부모가 되는 태종과 원경왕후의 묘소에서 찾았다. 태종이 1422년 원경왕후가 1420년에 죽었다. 즉 헌릉이 조성되고 그 기운으로 단종이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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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 능, 원경왕후가 1420년 이곳에 모셔지고 부터  불운이 시작되었다)
 

혹자는 헌릉이 사격이 힘이 있는, 대 명당이라고 하지만 필자가 둘러본 헌릉과 인릉은 흉지이다. 눈으로 봐서 형기상으로 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기 상충이라는 최악의 기운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헌릉의 기운으로 태어난 자손은 불운할 수밖에 없다. 특히 午生, 未生, 申生, 酉生이 매우 불리한 자리이다정리하자면 단종은 증조부모되는 태종과 원경왕후의 영향으로 불운한 사주팔자로 태어났으며 세종의 초장지 또한 흉지이기 때문에 골육간에 권력다툼이 발생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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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와 순원왕후가 묘셔진 인릉)

 

세종의 초장지는 어디인가?

이 또한 풍수계와 역사학계에서 현 국정원 경내와 인릉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하건데 세종의 초장지는 인릉 바로 옆이라고 추론을 한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세종의 수릉 즉 신후지지를 정하기 위해 우의정 하연과 예조판서 김종서가 세종 27년에 올린 상소문을 보면 동서 양혈의 거리가 944(280미터 남짓)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 동혈은 헌릉, 서혈은 현재 인릉을 이르는 것이다. 당시에 순조가 모셔진 인릉은 조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자리가 명당인가에 대하여 대신들이 노인네 무르팍 세우듯 서로 고집을 세웠던 것을 상소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상소문을 보면 조선왕조에서 왕릉 하나 소점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말이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분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보기 좋은 형세 즉, 형기풍수였다. 그렇다보니 그럴듯한 사격만 보고 능을 조성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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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당선생과 양우당 선생이 서있는 곳이 자리이다) 

 

헌릉에서 내룡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戌坐辰向으로 자리가 하나가 있다. 그곳에 헌릉이 조성됐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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