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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의 조부묘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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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삼의 팔괘풍수 작성일18-10-20 19:05 조회2,5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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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9일 한글날에 거당 선생과 김사장님 그리고 필자는 남원을 향해 새벽길을 나섰다.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에는 고려 말의 고승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가 소점했다는 황희 정승 조부묘를 둘러보기 위해서 였다

풍수야사에 의하면 나옹선사가 오부자라는 사람한데 명당자리를 잡아주는 조건으로 시주 돈을 받았는데 명당자리 보여주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자 오부자 아들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여 나옹선사에게 못된 짓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 그 광경을 지켜본 황희 정승의 아버지 황군서가 오부자에게서 받은 시주 돈을 대신 변상해주니 그 마음이 갸륵하여 나옹선사는 명당을 내주었고 황희 정승의 아버지 황군서는 그곳에 자신의 부친인 황균비를 모시고 황희 정승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황희 정승 조부인 황균비가 명당에 모셔졌다는 남원 근동에 전해지는 전설이다.

필자가 둘러본 황희 정승 조부인 황균비의 묘소는 명당임에는 확실하다. 이유인즉 정확한 재혈과 사격 전체에서 전해지는 생기의 천지교합을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옹선사가 소점했다는 풍수야사에는 필자로서는 의구심을 가진다. 혹여 황희 정승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 후대 사람들에 의해 사랑방에서 창작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주몽이 알에서 태어난 것처럼.....

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옹선사가 21세에 출가하여 24세에(1344)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1347(충목왕 3) 27세에 원나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1358년에 고려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선사의 나이가 38세이다. 나옹선사가 소점했다면 깨달음을 얻은 25세 부터 원경으로 건너가기 전 262년 동안에 가능했을 터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스님이 명당자리를 놓고 봉변을 당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원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38세 이후에 소점했다는 것은 더욱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번 답산에서 나옹선사가 됐든 누군가 제대로 재혈했다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묘역을 조성했으니 그 정도지 어느 누가 그곳에서 ()이 꽃을 피울지를 알 수 있었겠는가?

마을 입구에 안내판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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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벗어나 산속으로 조금 들어가면 황희 조부묘를 안내하는 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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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이 급하게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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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을 한컷 찍고 보니 김사장님이 예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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