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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속의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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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삼의 팔괘풍수 작성일17-12-19 10:33 조회1,9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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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란, 呼(호)는 숨을 내쉬고 吸(흡)은 들이마시다의 뜻이며 내쉬는 호(呼)와 들이마시는 흡(吸)의 중간을 지(止)라고 하는데 이를 호지(呼止) 흡지(吸止)로 다시 구분한다. 우리는 呼 → 呼止 → 吸 →吸止 순으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생 아무 생각 없이 숨을 쉬고 살아 왔겠지만 한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도 순서가 있고 마디가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살았던 생명줄이었다.

기공수련이나 명상등 많은 수련방법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호흡수련이고 그만큼 많은 연구도 있었다. 늘 불편함 없이 또 의식 없이 해왔던 것이 호흡이지만 호흡 속에는 대단한 철학이 숨어 있다.  숨을 쉬고 있으면 살아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폐포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생물학적 호흡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법칙이 호흡 속에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께서도 호흡수련을 하셨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호흡과 윤회사상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늦가을 바람에 뒹군 낙엽이야 내년 또 뒹굴겠지만 우리네 인생이야 한번 오면 어찌 기약이 있단 말인가. 어쩌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고행이라면 호흡 또한 삶의 무게가 아니던가. 삶의 무게에 부대끼면서도 피해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늙는다는 것이요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것은 청춘 일게다. 늦가을 나부끼는 낙엽을 보노라면 그 여름날의 푸름은 어디에도 자취가 보이지 않으니 자연의 섭리란 때론 참으로 야속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나날이 많은 나의 지난 기억을 모아본들 한줌도 되지 않는다. 그토록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던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막 나와 시작했던 태식호흡은 삶의 연식에 따라 자꾸만 어깨로 올라가고 마지막에는 피안의 세계로 접어드는 것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지금도 나는 죽음을 준비하고 또 연습하고 있다. 임종을 지켜본 사람에 따르면 사람이 마지막 길을 갈 때는 후~하고 마지막 숨조차 토하고 떠난다 한다. 이승을 떠날 때 한 모금의 숨도 다 토하고 떠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며 그 어느 작은 것 하나도 가지고 갈수 없고 한모금의 숨조차도 허락지 않는 곳이다. 죽는다는 것은 호흡수련에서의 끝없는 호지(呼止) 상태인 것이다. 호지상태에서 다시 들이마시는 흡(吸)으로 가면 살아나겠지만 호지에서 머문다면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해서 기운을 들이마시는 흡(吸)은 탄생이요 호(呼)는 죽음이 되는 것이다. 한 번의 호흡 사이클 속에 탄생과 죽음의 철학이 있고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야하는 나는 오늘 수없이 많은 삶과 죽음 즉 윤회의 굴레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생사(生死)가 일여(一如)하다 하지 않던가. 生속에 死가 있고 死속에 生이 있는데 무엇이 生이고 무엇이 死란 말인가? 원래 모든 것이 하나였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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